신종화 조원씨앤아이 이사

최근 일부 언론사의 홍범도 장군 관련 칼럼과 사설에서 오펜하이머 박사가 언급되고 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영화가 올여름부터 흥행가도를 달렸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반독일 진영의 물리학자들을 규합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이것이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의 패망으로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는 태평양 전쟁의 종식을 위해 일본에 행해졌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곧바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블록 형성과 세계적인 냉전체제로 전환되면서 미국에선 강력한 반공주의(매카시즘)가 확산된다. 오펜하이머는 매카시즘의 피해자였다. 한때 공산주의에 관심이 있었고,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핵무기 개발 정보를 소련에 전달한 스파이와의 연루 의혹으로 비화된다. 비밀취급 인가를 받지 못하게 되고, 미국 정부에 대한 자문활동에서 배제돼 세상에서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2022년이 돼서야 오펜하이머의 명예회복이 시작됐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홍범도 장군을 떠올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범도 소동은 오펜하이머 소동과 동일하다. 국가 영웅의 공헌이 이념대립 속에서 축소되고, 국가로부터 폄훼되는 논란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 독립투쟁으로 공을 세웠으나 이념대립과 독립운동의 분열 속에서 여생을 이국땅에서 어렵게 생활한 홍범도 장군은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숨을 거뒀다.

홍범도 장군이 북한 출범과 한국전쟁 발발에 끼친 악영향이 있었던가. 홍범도 장군이 1920년대 소련공산당에 가입해 육군사관생도의 귀감이 될 수 없어 흉상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은 중도·보수층 일부에서조차 역사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펜하이머와 홍범도의 인생 궤적이 다른 데다 현재 한국에서의 정치적 논란과 과거 미국에서 불었던 매카시즘을 달리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전반부의 세계사적 흐름에서 두 인물에 대한 정부 주도의 이념적 평가는 같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해 겨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것은 20세기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것과 다른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 설령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했고, 소련식 사회주의가 러시아의 민족적 전통과 국수주의에 내재화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념은 탈민족화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통치의 민족적·문화적·국수적 자원으로 활용할 뿐이다. 20세기의 시대적 주장을 21세기에 민족문화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선동의 시대에 대한민국도 민주화 이전의 흑백주의 시대로 돌아갈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인공지능(AI)과 드론이 등장하는 21세기형 네트워크 전장에서 선봉에 서야 할 육사생도를 왜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로 무장시키려고 하는가. 홍범도 장군으로 인해 육사생도들의 전투 의지와 결의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하는 것인가. 혹시 모를 북한과의 군사 대립에 육사생도의 정신력과 용맹함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육사생도는 과거형 흑백 알고리즘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기계가 돼서는 안 된다. 창의성과 자율성이 요구되는 전장에서 필요한 존엄한 가치와 승리의 전쟁사를 발굴해 가르쳐도 부족할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아픈 근현대사의 각인이 오히려 육사생도의 군사 의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신종화 정책마루 선우재 주임교수

신종화 정책마루 선우재 주임교수

경향신문 기사 링크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04202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