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몰락하고 있다. 부정선거 파문으로 시작되어 중앙위 폭력사태, 그리고 한지붕 두비대위, 검찰 수사와 합법성 소송전 등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으로 확대되고 있다.

언론의 집요함과 스스로의 자살골로 인해 사태가 일파만파되어, 이젠 부정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 민주주의와 건전한 사상.조직문화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분명한 건, 통합진보당의 사태는 통합진보당만의 문제도, 진보정당만의 문제도 아닌 야권전체 아니 한국정치와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것, 가깝게는 18대 대선정국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사태의 배경에도, 사태에 대한 입장에도, ‘국민’이 없다

○ 통합진보당 사태는 내부당원인 부산 금정구 이청호 구의원의 비례대표 경선부정 폭로로부터 시작되었으며, 5월 2일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를 발표하고 소위 당권파(전 경기동부연합세력)에서 진상조사를 부인하며 맞대응하면서 폭발하였음.

○ 또한, 진실공방을 벌이며 내분의 양상을 보이던 통합진보당은 비상대책위 구성과 경선비례대표 사퇴 등의 안건을 다루던 5월 12일 중앙위원회에서 사상초유의 폭행사태가 발생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접어들었음.

○ 마침내 중앙위원회 의결과 혁신비대위를 부정하는 당권파에서 별도의 당원비대위를 구성하고 중앙위 결정사항인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사태해결은 미궁에 빠졌고,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전방위 수사 개시로 사태는 더욱 확산되었음.

○ 5월 25일 혁신비대위에서 사퇴를 거부한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와 조윤숙, 황선 후보를 출당하기 위한 조치로 당기위원회에 제소하였고, 당권파가 이에 맞대응할 가능성이 높아 대충돌의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으며, 당권파와 입장을 같이하는 당원들이 ‘중앙위원회 효력정지와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상황이어서 검찰수사와 함께 법적다툼의 제2막으로 번지고 있음.

○ 한편, 혁신비대위의 당기위 제소에도 불구하고, 당기위의 절차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는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이상 제19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될 것으로 보임. 이러할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대응으로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 문제로 확산되고, 비판적 대중여론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됨.

○ 결국, 통합진보당 사태는 6월말로 예정되어 있는 새지도부 선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새누리당의 정치공방과 검찰수사,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하반기 정국까지 이어질 여지도 있어 대선정세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임.

○ 통합진보당 사태의 결정적 소재는 ‘비례대표경선 부정선거’이고, 이를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간 것은 ‘총체적 부정선거vs의도적 허위보고’라는 각각의 확신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적대적 대립으로 확대된 것에 있음. 여기에 보수언론의 색깔론이 덧칠해져 ‘진보의 도덕성과 정체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임.

○ 문제는 사태의 배경에서도, 사태를 대하는 입장에서도,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이 없다는 데에 있음. 즉,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을 통해 제3당이 되었고, 정당투표에서도 2,198,082표을 얻은 대중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정당 운영이나 공직후보 선출, 부정.부실 문제의 해결 등에서 국민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 않고 ‘그들만의 원칙’ 또는 ‘그들만의 해결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임.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중앙위 폭력사태’, ‘한지붕 두비대위’, ‘국민지지 보다 우위에 있는 당원명예’ 등 비상식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국민’이 중심이 아니기 때문으로 해석됨.

신념만이 소중하면, 정치를 떠나 운동을 하라

○ 정당과 국회의원에 대한 지지는 정치적 이념과 신뢰, 기대에 대한 표출임. 특히,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보수정당과는 차별화된 도덕성과 헌신성,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이끌 정의로운 이념과 정치에 대한 기대라 할 수 있음. 단, 대중정치가 시민사회운동과 다른 것은 신념에 버금가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과 개인(임의조직)이 아닌 공인(국가조직)이라는 점임.

○ 따라서, 진보정당이 도덕성을 잃고 정치활동의 기준을 국민으로 삼지 않는다면 이미 진보정치로서도 대중정치로서도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국민들도 등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임.

○ 실제, 통합진보당은 총선 정당득표율이 10.3%였던 것에 반해 최근 지지율은 4%대로 급격히 추락하고 있으며, 야권연대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됨.

○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국민들의 실망이 적지않은 상황이고, 사태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원칙’이 진보정당 지지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임.

○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이 계속해서 국민적 상식에 어긋나거나 국민적 기대에 위배될 경우, 최소한 대중정당으로서의 통합진보당은 국민들의 인정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보임.

곳간 세는 줄 모르고 주머니만 지킬 셈인가

○ 내외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며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MB정권 말기에 드러나는 대형비리와 사건이 통합진보당이라는 블랙홀에 전부 빠져들어가는 것임. 더구나, 정권교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진보의 몰락’은 야권에게는 핵폭탄급 악재가 되고 있는 상황임.

○ 실제, 민간인 불법사찰, 최시중.박영준 등 MB측근비리, 언론총파업, 쌍용차 문제, 노무현 전대통령 명예훼손 등 대선을 앞두고 MB정권의 부정부패부실이 쉴새 없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자중지란에 빠진 야권은 이렇다할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사안으로만 보면 야권이 정권퇴진운동을 통해 대선의 우위구도를 점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진보정당퇴진여론에 밀려 대선의 구도에서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며, 정권교체의 가장 큰 프레임이었던 정권심판은 조금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

○ 결국 통합진보당은 그들의 비례대표를 지키기 위해 정권교체라는 야권전체의 과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며, 그들의 논리를 빌린다 하더라도 ‘당원의 명예회복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서민의 절박한 과제를 등한시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임.

○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18대 대선은 야권에게 크게 불리하게 조성될 것이고, 한국사회의 진보적 가치도 급격하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됨.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진보정당에게 전가될 수도 있음. 아이러니컬하게 진보정당이 MB정권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임.

국민이 원하는 건, 사태수습이 아니다

○ 물론,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도 조속한 사태해결과 정치적 책임을 지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다만, 이러한 사태해결의 과정이 당내의 일치된 입장과 실천으로 진행되지 못함으로 인해 실질적인 해결이 되지도 못하고, 국민의 기대에도 한참을 못 미치는데 문제가 있음.

○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국민들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단순한 실력의 문제가 아닌 진보의 근본적 원칙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는 것은 단순한 사태수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임.

○ 참고로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거취에 대해 즉각 사퇴해야 한다(70.3% – 5/19 리서치뷰)고 응답하였으며,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의정활동을 벌일 경우 의정활동을 신뢰하지 못한다(62.8% – 5/15 모노리서치)고 대답하였음.

○ 하지만,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임. 진보정당이 혁신을 통해 대중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않게 조사된 바 있음. 이는 한국정치에서 진보정치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보이며,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음.

○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작금의 사태를 진보정치의 위기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소탐대실하거나 대중정치의 상식에 위배되는 행위를 지속할 경우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급격히 추락할 것임.

○ 또한, 국민들이 통합진보당을 지켜보는 것은 사태수습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근본적 혁신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함. 즉, 통합진보당의 과제는 내부적 해석에 의한 사태수습이 아니라 근본적 혁신을 통한 국민적 동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