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막이 올랐다. 하지만 시작 전 가졌던 기대와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실망은 커지고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선거 혁명이라 스스로 자화자찬했던 모바일 투표는 후보들 스스로 믿을 수 없다며 ‘불신투표‘로 낙인찍었으며, 경선을 통해 보여줘야 할 국민의 ‘울분 해소’와 ‘미래에 대한 희망’은 보여주지 못한 채, 불공정 시비와 보이콧이란 단어만 보여준 형국이니 국민으로서는 짜증나는 경선이라 안 할 수 없다.

결국, 경선 이벤트만 중시한 나머지, 정작 그 안에 있어야 할 ‘희열의 방정식’이 없는 결과가 빚어낸 경선으로서 낮은 투표율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의 시작은 훌륭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반드시 채찍을 가해야 하겠다는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같았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21세기 시대정신 부재가 가져온 결과는 낮은 정당지지율과 안철수의 신정정치, 더 나아가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역시 그렇지’의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인지하지 못하는 21세기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21세기 시대정신은 게릴라식 집단지성이라 말할 수 있다. 이념의 틀이 아닌, 현실의 문제와 개인의 생각에 비춰 사안에 따라 달리 대응하며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이성의 집합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21세기 시대정신은 20세기 패거리정치와 이념, 그리고 방식에 국한되어 21세기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정신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에서 케케묵은 편 가르기와 과거에 받았던 희열의 자위만 생각한 나머지 21세기 시대정신은 물론이거니와 ‘희열의 방정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의 가치는 본인의 생각에서 남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내가 변하며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기를 반복하는 예습의 학습이다. 진보의 잘못된 판단이 빚어낸 결과는 통합진보당의 경우에서 익히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진보의 예습보단 제자리의 복기만을 중시한 민주당의 지도부와 대선 후보로선 국민과의 괴리감을 나날이 키울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이 보여줘야 할 21세기 시대정신과 국민적 희열은 한반도를 강타한 볼라벤과 덴빈에서 찾을 수 있다. 태풍의 발원은 1미터 반경의 공기흐름에서 시작된다. 공기와 온도, 그리고 수증기의 역학관계가 만들어낸 나비효과가 한 나라를 강타할 수 있는 태풍의 실체이다.

작은 시작의 접점에서 만들어낸 역학 결과가 거대한 태풍의 시너지인 것처럼 국민의 마음을 강타할 수 있는 민주당의 시대정신은 국민적 실체가 녹아져 있는 국민적 동감이 내재되어야 국민적 태풍으로 거듭날 수 있다. 즉 알토란같은 국민 마음이 실재해야 그 회오리는 모든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는 구름의 회오리. 21세기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금의 시대정신에는 국민이 없고, 시대의 요구가 없는 그들만의 잔치로 시작했기에, 감동이 없으며, 희열의 방정식이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박근혜의 통합행보가 이벤트라 치부하기에 앞서서, 민주당 경선 자체가 이벤트가 아닌 지부터 자학할 때이다.

2002년 노무현 열풍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요인이 故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내제된 민주당의 시대정신이 국민의 시대정신과 맞아 떨어졌기에 2002년 대선승리가 가능했음을 다시금 복기해야 할 때이다.

MB정부가 그토록 추진하고자 애썼던 4대강의 결과가 낙동강 체류기간을 기존의 19일에서 164일로 늘려 강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켰듯이, 민주당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민의 바람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구체제, 변화가 없는 정당, 과거의 정당, 미래가 없는 앙시앙 레짐 정당으로 국민에게 각인될 뿐이며, 국민에게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사형집행을 받은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