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크놀로지와 정치

o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정치적 도전의 수단

  • 현대 민주주의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통해 소통과 참여라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되살려냈다. 민주적 선거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 시민권은 정치참여의 기회로 한정되어 갔고, 일방적이고 시혜적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수단인 전통적 매스미디어는 권력 획득을 위한 중요한 홍보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권력화 되어갔다.
  • 이런 가운데 등장한 인터넷은 쌍방향 기능,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자유, 기존 미디어를 흡수하는 뛰어난 능력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은 기득권과 결탁되어 권력화된 기존의 매스미디어에 도전하는 속성 때문에 기득권을 소유하지 않은 정치적 소수파에 의해 채택되고 언론 권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 잡았다.
  • 같은 맥락에서, SNS는 기존 매스미디어를 흡수한 포털, 공적 영역이 장악한 World-Wide Web, 규범화된 온라인 시민사회 환경에 개개인이 도전하는 양상을 띠며 등장했고, 이러한 속성 때문에 기득권을 소유하지 않은 정치적 소수파에 의해 채택되고 포털 권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 잡았다.

o SNS 소통의 착시효과

  • 따라서, 정치인들이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치적 소통에서 테크놀로지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SNS 중심의 소통이 갖는 착시효과이다.
  • 전통적 매스미디어의 기능적 분화로 정치인과 기자는 상호 저비용의 공생관계를 형성해가고 있다. 문제는 SNS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장착했음에도 전통적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언론노출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고, ‘언론노출 = 소통’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SNS를 통한 소통이 정책 또는 민원 등 실질적인 대화와 소통으로 이끌어질 수 있는 메카니즘, 다시 말해, 법적/제도적/정치적 환경을 가꾸는 데에 선관위, 정당, 국회 등 관련 당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1. 정당의 생존 전략

o 현대 정당의 위기 : 세계적 현상

  •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학자인 매튜 A. 크렌슨과 벤저민 긴스버그는 공동의 저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증거를 ‘주변화된 시민, 개인으로 해체된 대중’에서 찾는다. 역사적으로 정당의 황금기였던 20세기 중반,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정당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정당 간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적대적인 양상을 띠지만 대중은 동원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개인민주주의의 시대’라 일컫는다.
  •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가 2000년에 ‘(총리인) 자신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핵심적인 정책결정 과정의 ‘탈정치화’를 실행했다. 핵심은 주요한 의사결정에 전문가들을 늘린 것이다. 그는 집권 기간 동안 정치의 본질적인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어느 정권보다도 많은 홍보 전문가들을 고용해 언론을 통제하고, 당내 분열의 모습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본지가 지난 9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선생님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견해를 정치로 실현시켜주는 정당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2.4%는 ’없다‘고 응답했다. 정당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새누리당 지지층 조차 43.8%가 ’없다‘고 응답했다.
  • 우리나라의 정당은 배타적인 이해관계를 조직해 차별적인 정치자원을 공급하던 본연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준거집단으로서의 지위 또한 상실했다. 그리고 그 양상은, ① 핵심지지층과의 취약한 정책적․정서적 연계, ② 과도하게 원내정당 중심의 정당 내부 권력구조, ③ 대통령선거라는 정치 cycle을 중심으로 원내외 권력이 집중–분산을 오가는 권력 구조(Presidentialized Political Cycle)의 문제를 내부적으로 겪고 있다.

o 오픈 프라이머리 : 스스로 허문 멤버십의 장벽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선거라는 국면에서 정책과 이슈를 매개로는 일상적으로 동원되지 않는 대중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정당은 공직선거에 출마할 선거후보를 결정하는 공천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으로 제한하지 않음으로서 멤버십의 장벽을 스스로 허문다.
  • 지금의 ‘인터넷-모바일-네트워크정당’ 논의는 과거 새천년민주당이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반국민의 참여시켰던 ‘성공한 실험’을 최신의 테크놀로지 언어로 재해석한 것에 다름 아니다.
  • 현재까지 시도된 제한적 경선제는 정당 민주화, 정당의 현실, 기성정치인들의 과도한 기득권 사이의 균형점에 서 있다. 나아가, 완전개방형 경선제는 비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신인 정치인의 진입을 사실상 억제하고, 정당정치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한적 경선제가 자리 잡은 이후에나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o 정당의 테크놀로지 도입

  • 본지는 지난 10월 31일자 폴링포인트에서 최근 與野 유력 대권주자들이 앞다투어 내놓은 ‘인터넷-모바일-네트워크정당’을 다루면서, 선언적 의미의 ‘인터넷-모바일-네트워크정당’이 아닌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한 ①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전면화, ② 이슈와 정책의 일상적 생산과 활용을 주문한 바 있다.
  • 대권주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를 유인하기 위해 ‘인터넷-모바일-네트워크정당’을 천명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제기가 정치인 개인의 대권 진로를 위한 선언 이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정당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o ‘모바일’ 도입의 가능성

  • 2014년 3월 영국 노동당은 당원대회에서 모든 당원에게 당의 주요 의사결정과정(공직후보자 선출 포함)에 동일한 1표를 주는 안을 통과시켰다.(찬성 약 84%)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당원의 범위가 ‘온라인상에 회원가입만 한 registered supporters’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온라인에서의 가입이라는 행위마저도 계약을 통한 상당한 수준의 책무(commitment )로 인식하는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현대 정당정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영국 노동당의 이 같은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 학계에서는 정당론자의 대표격인 최장집 교수가 지난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모바일투표를 도입한 것에 대해 정당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라 비판한 바 있다. 더불어, 모바일 정당 도입에 신중론도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 기술적․윤리적․정치적으로 모바일 정당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위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기술적․윤리적․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 이후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 소결 : 실패한 확장 시도

o 우리나라 정당의 위협요소 : 장외현상

  • 한편, 우리나라 정당들은 현재 기존 정당을 대체, 내지는 정당의 역할을 잠식하는 세력/집단/운동 등 장외세력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들 장외세력의 힘은 날로 커 가는데,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들 세력과 ‘관계 맺을’ 준비가 덜 되어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 ‘관계 맺기’에 실패한다면 정당의 위축은 계속되고, 선거기계(electral machine)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 이 장외현상 또한 세계적인 현상이나, 정당의 기반이 견고한 유럽의 경우, 장외세력이 극우 또는 극좌 정당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겪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라고 하는 장외세력을 당내로 수용하는 데까지는 도달했으나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식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의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과감히 선택해 당을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그는 당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첫 외부세력과 대척점에 서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 결론 : 테크놀로지의 가능성과 한계

o 기술이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바일 정당 논의는, ① 위축된 정당 멤버십 규모와 체계를 개인들과의 느슨한 연대의 범위까지 확대할 필요성, ② 정치적 기득권 세력(여당)이 장악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영역을 선점하려는 시도 ③ 정당에 위협적인 외부세력을 당내로 유인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한 기제로서 급부상했다.
  • 정당의 위기라는 추세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이라는 추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모바일 정당’이라는 기술적 대안이 등장했지만, 정당의 위기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외연확대를 위해 취한 불가피한 선택이 오히려 당내 권력구조를 분산시켜 가뜩이나 취약한 당원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안정성을 해칠 우려도 있다. 정당에 대한 신뢰가 낮은 탈정치화된 시민이 정당과 커뮤니케이션하고자하는 동기를 어디서 찾을까도 장애요인이다. 과도한 원내정당 중심의 권력구조가 시민에게 분산되지 못한다면 정당의 운영시스템에서 시민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 대부분의 기술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내포한다. 문제는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가 기술 그 자체 속에 놓여 있는 반면, 인간 삶의 영역에 진입한 순간 본질적으로 사회적 조건에 의해 그 가능성과 한계가 규정된다는 것이다.